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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기후변화 대응의 최전선, 마을: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마지막 보루

Author
관리자
Date
2025-04-1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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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기후변화 대응의 최전선, 마을: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마지막 보루"

2025.04.19 / 김영래 (UFE 교수 및 한몽개발연구소 소장)

몽골은 북위 46.9°에 위치하며,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스텝 기후(Steppe Climate), 즉 초원기후에 속한다. 이는 연중 기온이 낮고 강수량이 적은 기후로, 수목의 자생이 어려우며 농업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러한 기후는 남쪽의 온대기후처럼 농업을 기반으로 한 인구 밀집과 경제적 풍요를 가능케 하지는 않지만, 북쪽의 한대나 냉대처럼 인간의 정착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몽골은 이처럼 정착과 생존 사이의 경계에 놓인 공간이다. 살아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성장과 번영은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곳의 삶은 늘 거친 자연에 순응하면서도 끊임없이 맞서 싸워야 하는 분투의 연속이었고,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이 생태계는 바로 그러한 분투와 지혜로운 적응이 빚어낸 결과이다.

2023년 현재, 이 땅은 또 하나의 새로운 거친 환경적 도전에 맞서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몽골에서는 1,166개의 호수와 887개의 강, 2,096개의 샘이 사라졌다. 몽골 정부 또한 국토의 76.9%가 사막화와 토지 황폐화의 위협에 놓여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환경 위기이며, 몽골 전역의 삶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 현상을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하기엔 여전히 논리적 간극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은 가장 설득력 있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난 60년간 세계 평균 기온이 0.7도 상승한 데 비해, 몽골은 무려 2.1도 상승했다. 초원기후 특유의 건조한 토양은 기온 변화에 특히 취약하며, 이는 마치 마른 건초에 불을 지피는 것처럼, 온도 상승이 토양에 직접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어쩌면 단순해 보인다. “몽골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변화의 원인을 찾고, 그것을 제거할 수는 없을까?” 그러나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기후변화는 초국가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기에, 몽골에만 영향을 미치는 원인을 특정하기도 어렵고, 설령 원인을 찾는다 해도 얽혀 있는 국제적 이해관계로 인해 그것을 제거하는 일은 더욱 복잡하고 난해하다. 결국 우리는 이 위기를 ‘함께 살고 함께 감당한다’는 자세로 마주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한 실천적 방법을 모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피할 수 없는 변화에 지혜롭게 적응해 나갈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몽골에서는 ‘누가’ 이 변화에 대응하고 적응해야 할까? 기후변화는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우선적으로 몽골에 거주하는 모든 지각 가능하고 행동 가능한 개인이 그 주체가 될 수 있다. 개인의 차원에서도 일정한 행태적·행위적 대응이 가능하며, 동시에 중앙정부가 정책적·정치적으로 대응을 주도할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모두 기후변화에 대한 유의미한 대응 주체임에 분명하지만, 몽골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대응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곳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독특한 공간환경과 생활방식, 그리고 유목 전통의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2021년 현재, 몽골의 국토 면적은 약 1,564,116㎢에 달하며, 이 광대한 땅에 약 340만 명이 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전체 면적의 불과 3%에 해당하는 울란바타르(4,007㎢)에 인구의 절반 가까운 160만 명이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 나머지 97%의 국토—이는 남한 면적(100,266㎢)의 약 15.3배에 달하는 지역—에는 고작 180만 명이 흩어져 살아가고 있다. 수도와 지역 간의 국토 이용에서 심각한 공간적 불균형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지역들은 다시 20개의 아이막(도)과 330개의 솜(군)으로 나뉘며, 평균 인구밀도는 제곱킬로미터당 약 1.15명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수준으로, 사실상 ‘거의 빈 공간’에 가까운 드넓은 대지 위에 인구가 듬성듬성 퍼져 있는 형국이다.

초원의 광활함은 단순히 넓다는 의미를 넘어, 이동과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물리적 장벽이 된다. 수백 킬로미터를 가로질러야 하는 거리감과, 도로나 경계선이 없는 열린 지형, 그리고 여기에 극심한 기온 차, 거센 바람, 예측 불가능한 기후까지 더해지면서, 초원의 환경은 세련된 문명 세계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거칠고 불편한 공간으로 인식된다. 이런 조건들은 초원을 단순히 먼 공간이 아니라, 문명인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물리적·심리적 거리로 만든다. 초원의 거침은 공간 그 자체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속도와 리듬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불편하고 낯선 세계로 남아 있다.

문제는 이 광활한 지역이 몽골 정부가 사막화와 토지 황폐화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밝힌 76.9%의 면적이 속한 곳이다.  20개 아이막과 330개 솜에 거주하는 이들이 이미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거나, 가까운 미래에 피해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곧 이 광활한 공간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먼저, 가장 직접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최전선'이다. 만약 몽골이 국토의 97%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최전선에 위치한 330개 솜을 중심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적응하는 전략은 더할 나위 없이 정당하고 필수적인 과제가 된다.

이 광활한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인구밀도로,   인구가 희박하지만  비어 있는 공간은 아니다.  이들  솜(군)은 솜센터를 중심으로 ‘정주’와 ‘이동’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몽골 고유의 유목 기반 사회경제적 생활 공동체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이곳에는 유목적 삶의 양식과 행태를 가진 주민들 간의 신뢰와 협력의 관계망, 지역화된 생산과 소비의 구조, 그리고 기초적인 생활 인프라가 형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솜은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뿌리내린 자생적 유목 공동체가 살아 있는 공간이다.

결국, 몽골의 드넓은 초원지대에서 기후변화의 최전선을 지킬 수 있는 주체는 분명하다. 바로 이 땅을 살아내고 있는 공동체들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초원의 광활함과 거친 환경은 외부인의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단순히 공간이 넓어서가 아니라, 그 속도와 리듬을 이해하고 적응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공간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일은, 외부적 개입만으로는 결코 충분할 수 없다. 이 땅을 일상으로 살아온 유목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지역 기반의 대응과 적응 전략만이, 광활한 국토를 지키고 기후변화에 맞설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정당한 길이다. 이들은 초원의 삶을 지탱하는 존재이자, 기후변화의 위협 앞에서 몽골 국토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이제 우리는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현재 몽골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 기후 대응 및 지역 개발 사업들이 과연 이처럼 지역 공동체 중심의 관점과 조응하고 있는지, 실제로 공동체의 참여와 자율성이 보장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적응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고 있는지를 돌아볼 시점이다. 기후변화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 최전선에 서 있는 마을과 공동체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중심에 놓고 다시 설계해야 한다.
* 본고는 푸른아시아 몽골지부 2023년 겨울  뉴스레터지에 기고한 내용을 수정하여 재작성했음